어떤 내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누가복음 말씀(개역개정)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9: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19: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19: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19: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19: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19: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19: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19: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19: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19: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19: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19: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19: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19: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앞에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깔며 외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늘에는 평화, 높은 곳에는 영광" 내용은 성탄절에 캐롤로 많이들 불러 익숙한 구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39절에 태클이 들어온다. 왜 저런 신성 모독적인 말을 하는가? 왜 당신의 제자들의 이런 말을 막지 않으시오? 라고 쓰고 "당신은 왕이 아니지 않소?" 라고 읽히는...


그러자 예수님, 이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이 돌들이 소리를 지른다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나에게 여러 상황에서 떠오르곤 한다. 부패한 정권이나 권력이 잘못을 덮으려 할 때 아무도 나서서 외치지 않는다면 공의의 하나님께서 "돌들이 소리를 지르게" 만드시지 않을까?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이 생기고, 교회가 장사하는 자들의 소굴이 되며(45절), 강도들이 교회에 뿌리내릴 때(46절) 또한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고 잘못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역시 "돌들이 소리를 지르게" 되지 않을까?


이 "돌들이 소리를 지르는" 상황이 된다는 것은 해석에 따라 아무도 나서거나 외치지 않는, 정말 갈 때까지 간 상황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나타나게 하실 것이라는 희망의 약속일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민주주의 뿐 아니라 종교, 사회, 교육 전반에 걸쳐 해당되는 말이라 본다. 나설 때 나서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의 문명은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또 하나의 고비가 왔다. 나설 때 나서는, 그리고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아는 사람들이 필요한 상황이다.


어떻게 되어갈지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고자 한다.

Posted by 초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