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우리말로 예를 들어 보자.
"꽃잎"을 어떻게 발음하는가? → /꼰닙/과 같이 발음할 것이다. 왜 그렇게 발음되는가? 잎이 종성까지 있는 음절이기 때문에 "꽃"이 /꼰/으로 발음될까?
그럼 "꽃이"는 어떻게 발음하는가? /꼬치/라고 발음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가 주어격 조사가 아니고 이(tooth)를 가르키는 말이라면, 즉 꽃으로 만들어진 이를 치아로 가진 인형이 있다면 "꽃이"는 어떻게 발음될까? /꼰니/와 같이 발음될 것이다.
자세하게는 국어교육과나 국어의 언어학을 배운 사람에게 물어봐야 겠지만 단순히 "꽃" 뒤에 붙는 말의 초중종성이 갖춰진 여부가 아닌, 명사 "꽃" 뒤에 또 다른 명사가 올 때와 조사가 올 때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특성을 우리가 배우기 전에 알 수 있을까? 당연히 없다. 외국인에게 우리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말하고, 아주 잘 하는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지만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에도 이상적인 것은 아닌 것이다. 대부분 외국인이 왜 어떤 때는 /꼰니/라고 하고 어떤 때는 /꼬치/라고 하냐고 물으면 "그냥 그런 거야, 자꾸 듣다 보면 알게 될거야~" 라고 둘러댈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궁금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한국어를 배운 만큼 그네들에게 우리나라에서 죽치고 살고 있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워 돌아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절망적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국어의 원리와 구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면 외국인이 궁금해 하는 것이나 국어의 특징을 잘 잡아 비교해 주거나 가르쳐 주어 효율적인 학습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것이 영어에도 적용된다. 무조건 많이 듣고 읽어라라고 학생들을 내팽겨쳐 두면 저절로 영어가 늘기 어렵다. 적절한 내용 전달과 함께 우리말과는 많이 다른 영어의 구조에 대해서도 같이 지도해 줄 때 효율적인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원어민들이 영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배우지 않은 이상 교과서의 회화 부분을 유창하게 읽어 주거나 생활회화 차원에서 표현들을 일부 가르치고, 작문을 보고 나는 이렇게 쓸 것 같다라고 자신의 표현을 적어 주는 것이 한계가 될 것이다. 왜 이 학생은 이 부분을 어려워 하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영어 표현을 학생이 쓸 때 영어식 동사나 표현을 쓰는 대신 한국어의 해당 동사를 번역해 쓰려고 하기 때문에 어색해 진다는 것을 알 수도 없다. 영어의 어떤 원리를 가르쳐 주면 이 막힌 부분이 뚫릴 지도 알 수 없다. 해당 학교의 영어교사들과 의사소통이 되려면 영어를 한국에서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합의와 의견일치, 혹은 토의를 통한 공감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영어교육이나 언어학에 대해 문외한인 원어민은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결국 모 사대부중 원어민 강사의 경우와 같이 한 학년당 7개반인 중학교에서 전 학년 일주일에 1번씩 21개 수업을 들어가 웃으며 교과서의 일부를 유창하게 읽어주고 아이들과 떠들다가 국공립에서는 돈을 짜게 준다며 인근의 영어마을이나 학원으로 떠나버리는 하는 사태로 이어지게 되기도 한다.
영어교육 관련 책들과 수업을 통해 20세기 전반부터 외국어를 가르치는데 어떤 방법의 변화가 있어 왔는지, 언어학이나 영어학을 통해 언어는 어떤 특징이 있으며 영어는 또 어떤 특징이 있는지 분야별로 고민해 보지 않고서야 어찌 영어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물론 4 skills(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가 같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무조건 원어민이면 다 된다고 볼 것이 아니라 어떤 원어민인가에 대해 더 살펴 보고 어줍잖은 원어민을 선택하느니 자신은 영어를 외국어로써 고생하며 배웠지만 남에게는 더 쉽게 가르치기 위해 여러모로 고민하고 노력한 한국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원체 대통령 선거는 "차악"을 뽑는 선거(누가 덜 나쁜 놈인가?)라고는 하지만 기왕이면 영어 교육에 대해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주길 바란다.
"꽃잎"을 어떻게 발음하는가? → /꼰닙/과 같이 발음할 것이다. 왜 그렇게 발음되는가? 잎이 종성까지 있는 음절이기 때문에 "꽃"이 /꼰/으로 발음될까?
그럼 "꽃이"는 어떻게 발음하는가? /꼬치/라고 발음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가 주어격 조사가 아니고 이(tooth)를 가르키는 말이라면, 즉 꽃으로 만들어진 이를 치아로 가진 인형이 있다면 "꽃이"는 어떻게 발음될까? /꼰니/와 같이 발음될 것이다.
자세하게는 국어교육과나 국어의 언어학을 배운 사람에게 물어봐야 겠지만 단순히 "꽃" 뒤에 붙는 말의 초중종성이 갖춰진 여부가 아닌, 명사 "꽃" 뒤에 또 다른 명사가 올 때와 조사가 올 때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특성을 우리가 배우기 전에 알 수 있을까? 당연히 없다. 외국인에게 우리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말하고, 아주 잘 하는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지만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에도 이상적인 것은 아닌 것이다. 대부분 외국인이 왜 어떤 때는 /꼰니/라고 하고 어떤 때는 /꼬치/라고 하냐고 물으면 "그냥 그런 거야, 자꾸 듣다 보면 알게 될거야~" 라고 둘러댈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궁금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한국어를 배운 만큼 그네들에게 우리나라에서 죽치고 살고 있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워 돌아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절망적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국어의 원리와 구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면 외국인이 궁금해 하는 것이나 국어의 특징을 잘 잡아 비교해 주거나 가르쳐 주어 효율적인 학습을 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것이 영어에도 적용된다. 무조건 많이 듣고 읽어라라고 학생들을 내팽겨쳐 두면 저절로 영어가 늘기 어렵다. 적절한 내용 전달과 함께 우리말과는 많이 다른 영어의 구조에 대해서도 같이 지도해 줄 때 효율적인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원어민들이 영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배우지 않은 이상 교과서의 회화 부분을 유창하게 읽어 주거나 생활회화 차원에서 표현들을 일부 가르치고, 작문을 보고 나는 이렇게 쓸 것 같다라고 자신의 표현을 적어 주는 것이 한계가 될 것이다. 왜 이 학생은 이 부분을 어려워 하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영어 표현을 학생이 쓸 때 영어식 동사나 표현을 쓰는 대신 한국어의 해당 동사를 번역해 쓰려고 하기 때문에 어색해 진다는 것을 알 수도 없다. 영어의 어떤 원리를 가르쳐 주면 이 막힌 부분이 뚫릴 지도 알 수 없다. 해당 학교의 영어교사들과 의사소통이 되려면 영어를 한국에서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합의와 의견일치, 혹은 토의를 통한 공감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영어교육이나 언어학에 대해 문외한인 원어민은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결국 모 사대부중 원어민 강사의 경우와 같이 한 학년당 7개반인 중학교에서 전 학년 일주일에 1번씩 21개 수업을 들어가 웃으며 교과서의 일부를 유창하게 읽어주고 아이들과 떠들다가 국공립에서는 돈을 짜게 준다며 인근의 영어마을이나 학원으로 떠나버리는 하는 사태로 이어지게 되기도 한다.
영어교육 관련 책들과 수업을 통해 20세기 전반부터 외국어를 가르치는데 어떤 방법의 변화가 있어 왔는지, 언어학이나 영어학을 통해 언어는 어떤 특징이 있으며 영어는 또 어떤 특징이 있는지 분야별로 고민해 보지 않고서야 어찌 영어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물론 4 skills(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가 같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무조건 원어민이면 다 된다고 볼 것이 아니라 어떤 원어민인가에 대해 더 살펴 보고 어줍잖은 원어민을 선택하느니 자신은 영어를 외국어로써 고생하며 배웠지만 남에게는 더 쉽게 가르치기 위해 여러모로 고민하고 노력한 한국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원체 대통령 선거는 "차악"을 뽑는 선거(누가 덜 나쁜 놈인가?)라고는 하지만 기왕이면 영어 교육에 대해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