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 정민경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 것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 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재.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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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기사를 읽었다(기사링크).
현재 카피라이터이며, 여전히 "경기여고 3학년 정민경"으로 알려지기도 하는 시의 지은이.
총칼 앞에서 약해지는 인간의 모습과 죄책감을 당시에 진짜로 있었을 법한 일화를 통해 전라도 사투리에 담아 표현하는 이 감각은 정말 대단한 감각이라고 본다.
참 멋진 아가씨다. 어떤 일, 특히 개개인에 따라 다르게 읽혀지는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용기 있게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 학교에서도 고깝게 보고 괴롭힌 교사들이 있다고 하니 마음 고생이 참 심했을 것 같다.
1980년 당시 나는 운암동 주공아파트 1단지 7동에서 살았었다. 지금은 모두 재개발되었다. 운암 롯데캐슬 1단지 정도 위치였을까...
5.18 당시의 유일한 기억은 옆집 아줌마하고 어머니께서 부엌 쪽 작은 창으로 내다보시면서 그 당시 버스 종점이었던 곳에서 머리에 흰띠를 두른 군인들이 탄 짚차가 와서 어떤 사람을 태우고 가자, "또 잡아간다, 잡아가." 라고 하셨던 장면이다.
궁금하여 머리를 내밀자 머리를 누르시면서 고개 들지 말라고 하셨었다. 창문과 그 현장 사이의 거리가 상당하여 군인들이 레고 장난감 사람 인형보다도 작게 보였는데도 어머니는 두려우셨나보다.
친척 중에 죽거나 다친 분은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아픔은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망월동 5.18 국립묘지에 가보면 이러한 아픔이 온몸의 땀구멍을 통해 들락날락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5.18 관련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전대 정문에서 교통 통제를 할때면 아무도, 정말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잠깐 가고 바로 서고 한참 기다린 후 다시 잠깐 지나가고 바로 서지만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기다린다.
지금은 전대 정문 모양도 바뀌었고 40년이 되어가지만 죽은 이들, 다친 이들, 행방불명되어 버린 이들은 계속 우리 주변에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뭐가 그리도 잘났는지 뻔뻔하게 회고록을 쓰고, 내용이 잘못된 부분에 대해 지적을 받고도 또 다시 재출간을 시도하는 전두환이는 진정 양심에 털이, 굵은 동아줄 같은 터럭이 양심의 피부가 전혀 보이지 않도록 수두룩 뻑뻑하게 난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기사링크).
강풀의 만화 "26년"을 토대로 만든 영화 "26년"에서 마지막 장면에 왜 마냥 저격수의 사격을 기다리고 있는지, 옆에서 그냥 목을 조르던지 쳐죽이지 않는지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전체 이야기의 흐름 상 일부러 그렇게 한 장면이었겠지만...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였지) 때 전두환이 온다고 운암 사거리, 지금 위치로 보면 벽산블루밍메가시티(뭔 이름이 이렇게 길어) 3단지 301동 앞 도로에 서서 서광주IC 방향에서 동운고가 방향으로 차를 타고 지나가는 전대갈을 향해 작은 태극기를 흔들며 박수치고 환호성을 지르도록 동원이 된 기억이 있다. 참 더러운 기억이다. 살인자 새끼를 위해 박수치는데 끌려갔었다니...
끔찍한 비극은 5.18이던 세월호던 누구의 책임이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서 따질 것은 따지고 책임지울 것은 지우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격언처럼 "역사는 반복된다."
2차대전 이후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임명되는 총리들이 유태인 학살 관련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는 독일과 전범들의 위패를 모셔 놓고 매년 그 앞에서 총리와 고위 관료들이 참배를 하는 일본의 태도를 비교하면서 일본을 욕하는데,
우리도 베트남전 당시 있었던 일, 광주 5.18, 제주 4.3 과 같은 일들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와 발표, 사과등이 있어야 계속 일본을 욕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4월 3일, 4월 16일, 5월 18일... 따스하고 날씨 좋은 계절이 되면 아픈 기억에 안타까워하며 숙연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절절한 아픔에 몸을 수그리게 되는 날짜가 없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5/19 수정: 같이 연구하는 수업 연구회 모임의 선생님 중 한 분이 말씀하신 내용.
영화 "화려한 휴가"를 3번 보았는데, 2번은 광주에서, 1번은 경기도에서 보았단다. 광주에서 봤을 때 사람들이 엔딩 크레딧 다 올라갈 때까지 한 사람도 나가지 않았었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나가면서 듣기를 어떤 분이 "영화니까 많이 미화했네..." 라고 하는 것을 들었단다.
경기도 어느 극장에서 보고 나가는데 자신의 어머니뻘 되시는 분이 "영화니까 총으로 쏘고 그런 것으로 만들었지, 실제로는 최루탄이나 쐈었겠지..." 라고 하시는 것을 듣고 진심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온도차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다른 지방의 나이 드신 분들은 광주에서 있었던 5.18이 그다지 잔혹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